가을방학

세상은 한 장의 손수건 LP / 정규 4집

트랙리스트

<SIDE A>

1. 새파랑

2. 세상은 한 장의 손수건

3. 반얀나무 아래(feat. 짙은)

4. 끝말잊기

5. 사랑없는 팬클럽

6. 그대로, 그대로(remastered)

<SIDE B>

1. 설탕옷

2. 한 권도 줄지 않는 정리의 마법

3. 아픈 건 이쪽인데요

4. 나미브

5. 성주간(Semana Santa)

6. 루프탑(remastered)

앨범 설명

가을방학의 네 번째 정규 LP앨범 “세상은 한 장의 손수건”

이번 앨범은 2015년 발매된 “세 번째 계절” 이후 5년 만에 나오는 가을방학의 정규 앨범입니다. 2017년에 나온 컴필레이션 “마음집” 이후 송라이터 정바비는 공연을 함께 하지 않는 스튜디오 멤버로 역할이 바뀌었습니다. 이런 체제로 전환한 다음 처음으로 만든 앨범인 셈입니다. 바비가 곡작업에 전념한 만큼 완성도있는 앨범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과 공을 들였습니다.

올해는 특히 데뷔 앨범이 발매된지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두 사람은 어느덧 4장의 정규 앨범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과분한 사랑을 받았던 덕분이라고 생각하며, 이번에 수록된 곡들을 소개하는 말을 적어보았습니다.

A1 새파랑

바비: 사람이 일반적으로 가장 호감을 느끼는 색이 파랑이라고들 합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하늘과 바다가 파랗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막 날개짓이 익숙해진 조그만 새가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위 푸르른 하늘을 날아오르는 모습을 그려본 곡입니다.

계피: 이제껏 가을방학에서 자주 그리지는 않았던 희망찬 내용의 가사입니다. 이 새처럼 앨범을 시작하고 싶어 1번곡으로 선택했습니다. 

A2 세상은 한 장의 손수건

바비: 스페인의 관용구로 “El mundo es un pañuelo”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직역하면 ‘세상은 손수건이다’라는 뜻인데,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 경우에 쓴다고 합니다(우리 말로는 “세상 참 좁다” 정도겠지요). 하필 손수건이라는 비유를 쓴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계속 되뇌이다 보니 한 장의 손수건에 수놓아진 소우주, 그리고 그 천조각이 화창한 날 기분좋은 바람에 펄럭이는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사랑하는 이와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순간의 가슴벅참을 표현해보고 싶었던 곡입니다.

계피: 꽃과 새가 콜라주된 앨범 커버 디자인은 이 곡에 영감을 받아 진행했습니다. 촘촘히 짜넣은 건반 트랙들이 설렘을 더해주고 있으니 들을 때 참고하면 더 즐거우실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트랙들을 ‘뾰롱뾰롱하다’고 표현합니다.

A3 반얀나무 아래

바비: 가을방학 최초의 듀엣곡이자, 첫번째 보사노바 곡입니다. 또한 조빔의 명곡 “One Note Samba”를 오마주한 곡이기도 합니다(“One Note Samba”의 verse는 그야말로 한 음(one note)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나긋나긋하면서도 젠틀한 분위기를 채워주기 위해 남자 객원 보컬로 짙은을 초빙하였습니다. 감성적인 발라드나 공간감있는 록 넘버로 짙은을 기억하셨던 분들께도 이 노래는 그의 또다른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계피: 홍갑님이 정교한 기타 편곡을 완성해주셨습니다. 저처럼 찾아보시는 분이 있을 것 같아 쓰자면 아마빛은 황갈색에 가깝다네요.

A4 끝말잊기

바비: ‘서로를 [잇다]’가 ‘서로를 [잊다]’가 되어가는 서글픈 이별 장면을 단조(minor)의 멜랑콜리로 포착해보고 싶었던 곡입니다. 이를 위해 ‘끝말잇기’라는 모티브를 사용하여, ‘헤어[져]’라고 이별을 고하는 말로부터 어떻게든 두 사람의 스토리를 이어가보려 ‘[져]줄게’라고 답하는 이야기입니다. 공동 프로듀싱을 담당한 고경천님은 이번 앨범 전반에 걸쳐 탁월한 아이디어를 제공해주셨는데, 이 곡은 그 중에서도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해주신 트랙입니다.

계피: 90년대풍의 흥겨운 아련함을 살린 곡입니다. 작업 기간중 가사비디오 연출을 맡은 이응과 거실에서 이 노래 데모에 맞추어 춤을 추며 놀았던 적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가을방학 노래에 맞추어서도 춤이 추어지더군요. 한번 시도해보시길.

A5 사랑없는 팬클럽

바비: 요 몇년간 뜻하지 않게 K-Pop 아이돌 쪽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의뢰받은 부분만 기술적으로 납품하는데 그치고 싶지 않아, 시간을 들여 해당 아티스트의 작품 세계와 발자취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아이돌과 팬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찬찬히 따라가다보니 이런 깊고 고운 마음들을 ‘유사연애’로 치부하는 것이 지독한 편견과 무지에 불과하다고 실감했습니다. 비록 먼발치에서일 지언정, 누군가를 오래오래 뜨겁게 사랑하고 응원한 추억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이별 노래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계피: 처음에는 소박함을 살리는 편곡이었지만 좀더 애틋함을 표현하고 싶었고, 그래서 플루트, 클라리넷, 호른 등 목관악기의 합주와 함께 팀파니와 슬라이드 기타가 어우러지는 스케일있는 후반부를 작업했습니다. 가사비디오에는 바비가 좋아하는 아티스트 ‘Teenage Fanclub’에 대한 추억을 담았습니다.

A6 그대로, 그대로

바비: 사랑노래, 특히 발라드에서 2인칭의 톤을 정할 때 돌고돌아 결국 ‘그대’로 가곤 합니다. 정말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그대’는 오직 노랫말에서만 쓰이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노래가 아니면 감히 부를 수 없는 ‘그대’에게 ‘그대’가 아니면 생길 수 없었을 감정을 전하고 싶을 땐 결국 ‘그대로’ 귀결되지 않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계피: 이렇게 스트레이트한 사랑의 감정은 가을방학에서 간만에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리듬파트를 넣을지 고민하다가 결국 건반 중심의 소박함과 따뜻함을 살리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B1 설탕옷

바비: 커피샵에서 주문을 하고, 향기롭고 따뜻한 한 잔의 블랙 커피와 함께 대조적으로 새하얀 설탕이 놓인 것을 보면서 이 둘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할까 망상에 빠지곤 합니다. 커피는 콜롬비아나 브라질 같은 지구 반대편에서 왔을 것이고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 역시 머나먼 열대 지방에서 자라났으니 이 둘이 각기 다른 긴긴 여정을 거쳐 커피숍 한 테이블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이것 또한 무언가의 인연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커피와 설탕의 러브스토리를 그려보았습니다.

계피: 처음 데모를 받았을 때 참 가을방학답구나 하고 느꼈던 곡입니다. 널 위해서 너무나 뜨거운 것까지야 모르겠지만 나름대로는 뜨겁다며 시침떼는 화자 특유의 달콤함이 감상포인트입니다. 그래놓고 또 정성은 다하는 재미있는 화자입니다. 4집까지 통틀어 처음으로 ‘슈가랍 슈슈가랍’하는 빈티지한 코러스가 들어갔습니다.

B2 한 권도 줄지 않는 정리의 마법

바비: 책을 사랑하는, 아니 적어도 책을 쟁여놓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해보았을 상황을 노래로 만들었습니다. 맘 먹고 책 정리하려고 목장갑까지 끼고 덤벼들었다가, 버릴까 말까 한 권 한 권 펼쳐보는 동안 어느 순간 정리가 아닌 본격적인 독서로 변질되어버리는 그런 장면을 그려보았습니다.

계피: 데모에 노래를 녹음해 보내주자 바비가 이 곡의 업템포에 영감을 받았다며 곧바로 새로 만들어 보내준 곡이 <세상은 한 장의 손수건>입니다.

B3 아픈 건 이쪽인데요

바비: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하죠. 그렇다면 그 중간 어딘가쯤에 비극도 아니고 희극도 아닌, 아니 비극이면서도 희극인 것처럼 보이는 어느 지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희미한듯 선명하게, 삶의 우스꽝스런 잔혹함이 드러나는 그 한 지점을 묘사해보고자 한 곡입니다.

계피: 편곡면에서나 보컬면에서나 지나치게 진지하지 않도록 고민한 곡입니다. 슬픈 가사와 밝은 리듬이 주는 간극을 통해 아이러니가 드러나도록 의도했습니다.

B4 나미브

바비: ’나미브’는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해안에 있는 사막입니다. 원주민어로 ‘아무 것도 없는 토지’라는 뜻의 이 사막은  세계에서 유일한 해안 사막, 즉 사막이 바다와 만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자기 편이 없는 것 같은 고독감에 마음이 사막처럼 황량해진 주인공이 바다처럼 깊은 외로움을 가진 사람과 만나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3집에 수록된 “사하”의 남반구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두 사람이 결국 어떻게 되었을지는 듣는 분이 해석하기 나름입니다만, 엔딩에 나오는 피아노 반주의 허밍에서 만큼은 적어도 두 사람이 손잡고 끊없이 이어진 바닷가를 거닐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계피: 처음엔 가사면에서 지금 버전보다 더 많은 아이디어가 촘촘히 있는 곡이었습니다만, 사막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이라는 상황 자체가 우리의 지리적 환경에서는 낯선 부분이 많기에 더 전달력이 높은 내러티브로 다듬는데 공을 들였습니다. 밤바다에서 산호초가 일제히 빛을 내는 장면이 두 사람의 힘든 사랑에 위안이 되기를 바라 추가했습니다.

B5 성주간(Semana Santa)

바비: 몇해 전 마드리드에 여행갔을 때 마침 한 해 중 가장 큰 축제인 ‘Semana Santa’, 즉 성주간 행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전혀 정보없이 혼자 바에서 하몽과 와인을 먹고 있노라니 엄청난 인파가 길을 메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뭔가 엄청난 축제가 벌어진줄 기대했는데 한참을 기다려서 보게된 것은 엄청나게 큰 예수상과 성모 마리아 제단을 어깨에 메고 느릿느릿 걸어가는 일련의 사제들일 따름이었습니다. 축제라기보다는 엄숙한 제의였습니다. 한 걸음 가다가 멈추고, 또 한 걸음을 가다가 멈추고 하는 행렬을 보며 이토록 조심스럽고 긍휼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대할 수만 있다면 모든 이가 마음의 평화를 찾는 것도 헛된 꿈만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계피: 가사가 무거운 면이 있는만큼 편곡은 웅장하기보다는 단촐하게 해서 균형을 잡았습니다.

B6 루프탑

바비: 이번 앨범은 마지막 곡을 고르는 데 특히 고심했습니다. 원래 제 선택은 “새파랑”이었는데 최종적으로는 “루프탑”으로 앨범을 마무리짓게 되었습니다. 가을방학은 어느 앨범이나 똑같다, 4집 곡이 1집에 들어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노래가 항상 비슷하다고 자조적인 어조로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이 점에 대해 묘한 자긍심도 갖고 있습니다.

계피: 차분한 곡도 많이 섞여 있지만, 이번 앨범은 저로서는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가벼운 정서를 충분히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 곡처럼 두근두근 하는 마음으로 앨범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도와주신 분들께나 오래 기다려주신 리스너들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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